쌍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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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여행기

아빠, 호텔은 어떻게 생겼어요?
캠브리지(Cambridge, Massachusetts) -> 보스턴(Boston, Massachusetts) ->
뉴포트(Newport, Rhode Island) -> 그로톤(Groton, Connecticut) ->
뉴헤이븐(New Haven, Connecticut)

39부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오늘 이동거리 : 213마일(341 Km), 누적거리 : 6036마일(9657 Km)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보스턴과 인근 캠브리지를 구경하면서 이번 미국여행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쇼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쇼핑센터를 가서 쇼핑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도착하면서 휴스턴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느라 다닌 것 이외에는 쇼핑이라고 불릴 정도의 쇼핑몰들을 구경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식구들, 박여사나 저나 쇼핑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또한 그러한 것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념품가게나 골동품가게(Antique Shop)와 같은 특이한 곳은 저희도 구경을 했지요.
허나 이곳 보스턴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저의 반바지가 3개 있었는데 1개가 찢어져서 2개로는 도저히 다니기가 어려워 1개를 사기위해 쇼핑센터를 찾게 되었습니다.
숙소를 정하러 다니면서 길가에 쭉 늘어서 있던 쇼핑몰을 본 적이 있어 오늘 아침 그리로 가기로 한 겁니다.

일단 그 곳에서 본 타겟(Target)에 가서 - 사실 우리가 원한 것은 월마트(Wal Mart)가 있었으면 했는데 타겟만 있었던 거지요. -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쇼핑으로 시작했습니다.
타겟에서 마음에 드는 반바지를 4달러라는 싼 값에 아예 2개를 사고 보니 당장 입을 티셔츠도 3달러짜리가 있는 겁니다. 여기서 티셔츠도 2장 사고...물론 박여사도 셔츠와 같은 것을 10달러 정도 가격에 1~2개 정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덩달아 타겟 옆에 있던 베스트바이(Best Buy)라는 전자제품 쇼핑센터도 구경했지요. 살만한 것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한국에도 요즘은 웬만한 것들은 다 팔고 있고, 또 우리는 한국에서도 비싼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비싼 물건 판다고 좋아할 리도 없지요. 사실 우리는 같은 돈이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여행과 같은 곳에 투자를 하는 성향입니다.
한참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이제는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어 차를 타고 떠납니다.
제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길을 들어선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한 보스턴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Cambridge St.을 따라 가다 Brighton Ave.로 들어서니 우리가 어제 포기한 미술관(Museum of Fine Art)도 나타나고 보스턴대학(Boston University)도 지나가게 됩니다.
어제 본 비콘 힐(Beacon Hill) 지역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의 모습입니다.
차에서 내리지는 않고 차 안에서 바라보는 구름이 잔뜩 낀 보스턴의 회색빛 하늘 속에서 간간이 지나가는 보스턴의 상징물들이 우리에게는 색다른 풍경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프루던셜(Prudential) 빌딩이나 존 행콕 빌딩(John Hancock)등 보스턴의 랜드마크와 같은 빌딩들도 겉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지요.
계속 가면서 Beacon St.를 지나 백베이(Back Bay) 지역으로 접어들자 전혀 상상치도 못한 거리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큰 길 가운데가 푸른 나무와 풀밭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는 길인 겁니다. 그 공원 양 옆으로 일방통행의 도로가 있어 꼭 중앙분리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중앙분리대와의 차이점은 완전한 공원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로 중앙에 있는 공원에 나와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길 양쪽으로 벽돌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이 푸른 공원과 아주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건물들은 아파트나 사무실들로 된 주상복합의 고색창연한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건물입니다. 상당히 오래된 듯한 모습에서 옛날에는 최신식 아파트였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보스턴을 좋아하거나 다시 가보고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동네를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백베이 지역의 끝은 이틀전 우리가 걸으면서 본 보스턴 가든과 커먼입니다. 그 옆으로 지나가니 차이나타운도 나오고...

이제 보스턴 시내 드라이브도 끝나고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할 일"은 이제부터 3가지입니다.
첫째는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의 뉴포트(New Port)입니다.
둘째는 코넷티컷(Connecticut)의 그로톤(Groton)에 있는 미 해군 잠수함박물관입니다.
셋째는 같은 코넷티컷 주의 하트포드 근방에 있는 Dynosaur State Park이나 뉴 헤이븐(New Haven)에 있는 예일대학(Yale University)입니다.

이제 첫번째 여행지인 뉴포트로 갑니다. 미국본토에서 가장 작은 주(State)인 로드 아일랜드에 있는 곳이지요. 이 곳은 I-93을 따라 가다 24번 도로로 빠져 계속 가면 나오는 곳입니다.
24번 도로도 Interstate와 다를 바 없게 잘 포장되고 중앙분리대까지 있는 고속도로입니다. 가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우리는 걱정을 많이 했죠.
사실 코넷티컷으로의 여행은 미리 계획한 것이지만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New Port)는 전혀 생각지도 않다가 이번 미국여행 중에 들은 얘기들을 토대로 새로 추가한 지역입니다.
로드아일랜드는 상당히 부유한 사람들의 저택(Mansion)이나 집들이 있는 곳이지요.
우리가 많이 본 영화들에서도 로드아일랜드라는 지명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 "러브스토리(Love Story)"에도 주인공이자 부잣집 청년인 올리버의 본가가 있는 곳이 로드아일랜드로 나오구요.

<뉴포트의 거리 모습> <뉴포트의 저택 중에서>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흉내내고 싶은 마음으로 한데 모여 사는 저택들이 이 곳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 모여 있는 겁니다. 실제로 이들 저택은 여름 한철 쓰기 위한 별장이라고 합니다.
미국 독립후 100년이 지나면서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이민 노동자들의 싼 노동력으로 떼 돈을 벌게 된 초기 미국 산업자본가들이 대를 이어 유산을 상속하면서 그 2세, 3세들이 로드아일랜드의 바위투성이 해안인 뉴포트에 자리잡고 대 저택들을 건축한 것이지요.
이 당시, 즉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만들어진 이 저택들에서는 유명한 일들이 발생하여 미국내 전역에서 분노의 함성을 이끌어 냅니다.
그 결과 20세기 초의 대통령인 디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에 의해 반 트러스트 법 및 상속세법 등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당시 일화로는 1892년 준공된 밴더빌트(Vanderbilt)가문 - 19세기 초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가 나룻배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대서양을 오가는 화물선단으로 돈을 벌었고, 이 재산을 상속한 2세, 3세가 다시 재산을 증식하면서 가문이 형성되었죠. - 의 초호화 저택은 르네상스양식의 대 저택으로, 준공 기념파티는 이 당시 뉴포트에 살던 다른 부호들도 댄스파티가 열린 이 집의 홀은 전무후무한 초호화 홀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엄청난 호사스러움을 부렸다고 합니다. 저택 건축비는 당시 200만 달러라는데 실내장식비가 900만 달러라고 하니 감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웃지 못할 일화는 심지어 개 100마리인지 1000마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개들을 초대한 "개들의 파티"까지 개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개들에게 먹인 음식이 쌀밥, 스튜, 비스켓과 같은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이 일이 기자 한사람에 의해 뉴포트 바깥에서 기사화됨으로써 뉴포트에 모여 사는 부호들의 사치스러운 면이 소개되었고 이 때문에 당시 미국내에서는 엄청난 반대여론이 들끓었다고 합니다.
뉴포트의 부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와 같이 자선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자기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데만 몰두하여 결국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이지요. 당시 뉴욕에서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하루 16시간씩 미싱 앞에 앉아 일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그들을 "도둑귀족"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아무리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같이 살아가는 대다수 시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혼자 혹은 소수의, 독점과 상속에 의해 번 돈으로 살아 가던 그 당시 미국의 대부호들은 결국은 자기 자신들이 벌인 초호화 사치에 의해 망조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정말로 분수는 지켜야 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100년 전의 그 저택들을 가서 보려고 하는 겁니다.
모든 저택들을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일부만 빼고는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몇 개의 저택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돈을 내면 7~8군데의 저택 투어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예외 없이 분수를 지키려고 합니다. 19세기말의 대부호들 같이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택을 바깥에서 보기로 했죠. 돈 안내고...
뉴포트까지 가는 동안 비는 계속 옵니다.
뉴포트에 들어서면서 안개가 자욱하고 부슬부슬 비가 내려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도 언제 또 여길 오려나 하는 마음으로 비옷을 입고 구경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뉴포트 항구가 있는 곳을 찾아 돌아 다녔는데 여느 작은 항구와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다시 차로 저택들을 찾아 나서서 구경을 하기로 하고 지도를 찾아 가다보니 양 옆으로 거대한 저택들이 나타납니다. 집의 문과 담만 봐도 아, 이것이 저택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죠.
중간 중간 "Public Open"이라고 쓴 것을 보고는 차를 끌고 들어 갔습니다.
정말이지 저택이 어떤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그 상상을 풀어 주는 모습입니다.
집이 아니라 건물이라고 해야 할 저택 건물은 워싱턴 DC나 보스턴에서 본 정부 청사와 같은 르네상스식 전물들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유럽의 궁전과 같은 모습입니다. - 그 저택들의 정원은 아마도 축구장이라면 여러 개가 들어갈 정도의 넓이, 아니면 골프장을 지어도 몇 개의 홀은 나올 정도로 대단히 넓은 모습입니다. 파란 잔디밭과 허쉬가든에서 본 땅끝까지 내려온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는 모습은 오히려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을씨년스럽습니다.
꽃밭도 아직 잘 가꿔져 있는 것이 지금도 주인이 살고 있는지, 아니면 시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온갖 대리석으로 계단과 정원 안에 있는 작은 건물들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요.
더욱 놀라운 것은 건물 앞에 장식된 석상들입니다. 석상들의 재료나 규모가 문제가 아니고 그 모습입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가 초식동물을 물어 뜯고 있는 그 모습에서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도대체 이런 집을 만든 주인이 제정신이었는지 궁금하구요, 자기집에 어쩌면 그런 석상들을 만들어 놓았는지, 그것도 건물앞 계단에 말입니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는 아무리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라도 그런 모습의 조각상을 집에다가 설치한다는 것이 도저히 저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꼭 정글의 약육강식의 법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 초기 자본주의 돈벌이에만 치중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혹시 이 석상들을 만든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을 비꼬아 표현하느라 만든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지요.
어떤 저택은 하얀 대리석으로, 또 어떤 집은 붉은 돌로, 갖가지 형태와 독보적인 모습은 이 뉴포트의 저택들에 살던 사람들의 재력을 보는 듯 합니다. 한 집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돈을 내는 것이지요. 이런 곳에서 식사하는 것은 어떨 지 궁금했지요.
모든 곳이 오픈되어 있지는 않아 몇 군데만 봤지만 당시의 부호들의 삶을 알만 했습니다.

<뉴포트 저택 내부의 분수와 정원>

이제 코넷티컷으로 넘어갑니다.
로드아일랜드에서 넘어가면 가장 가까운 코넷티컷의 도시중 하나가 그로톤(Groton)입니다.
이 곳에 미 해군의 최대 잠수함기지가 있습니다. 물론 원자력잠수함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디젤추진잠수함은 없고 모두가 원자력추진잠수함입니다. 즉 핵잠수함인 겁니다.
그곳에 잠수함 박물관이 있어 우리는 방향을 그 곳으로 잡은 것이지요. 특히나 이곳 잠수함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잠수함으로 북극의 바다 밑을 횡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노틸러스(Nautilus)"호가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버지니아의 노포크에서 전시된 전함을 보고 이번에는 잠수함을 보고, 마지막으로 뉴욕에서 전시되어 있는 항공모함을 본다면 미 해군의 웬만한 군함들은 거의 다 보는 셈이지요. 우리나라의 해군이 가질 수 없는 군함들을 보면서 강대국의 힘을 과시하는 모습들에서 초라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봅니다. 언제나 그런 거대한 군함들을 가질 수 있는지 아득하기만 하죠.
그 옛날 신라시대나 고려, 조선 중기까지는 우리도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잠수함 박물관으로 향해 운전하는 도중 맥도널드에서 항상 하던 방식대로 자동차안에서의 식사를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이제는 차안에서의 식사는 일상화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당연하게 여기는 식사인 겁니다.
뉴포트에서 사실은 2시간 정도 구경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실제로 4시간 가까이 지나가버려 벌써 저녁이 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즉, 잠수함 박물관을 보러 가기에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이지요.
잠수함박물관 오픈시간이 5시까지로 되어 있어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그로톤에 있는 미 해군 최대의 잠수함기지내 잠수함박물관>

가까스로 도착해보니 시간은 4시 45분이 넘었고 주차장은 벌써 폐쇄가 되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의 라이트형제 기념유적지에서의 일과 비슷합니다. 일단 차를 주차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저는 차안에 그대로 있고 아이들과 박여사만 들여보내 잠깐이라도 구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야 대강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또 나중에 찍어온 사진과 비디오로 보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 큰 박물관은 아니거든요.
결국 15분 넘게 구경하고 나온 박여사의 말은 저를 안심시킵니다.
"다 봤어, 하나도 빼지 않고...화장실도 갔다 오고..."
뭐 이 정도면 대강은 본 것이지요. 잠수함도 구경하고 각종 어뢰들도 구경했다더군요, 잠수함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건들이나 시설들도 마찬가지고, 잠수함발사 핵미사일도 전시된 것들은 모두 보았다고 합니다. 박물관 크기가 생각보다는 작았다고 하더군요.
천만다행히 입장료가 없었기에 돈 아까운 생각은 안 들었다는 군요. 단지 제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지요.

이제 마지막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이대로 하트포드(Hartford)로 가면 내일 공룡공원(Dynosaur State Park)을 가야 하는데 월요일인 내일은 이 공원이 쉬는 날입니다. 난감한 상태가 되었지요. 한참 상의 끝에 공룡공원은 포기하고 일단 뉴헤이븐의 예일대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 구경은 도착하는 대로 하거나 내일 하는 것으로 정했지요.

<예일대에서>

I-95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서 일요일 저녁의 러시아워와 겹칩니다.
이번 여행에서 러시아워는 많이 만났지만 일요일 오후는 처음이라 당황했습니다.
역시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요일 오후는 놀러 갔던 차들이 복귀하느라 몰려서 길이 많이 막히는 모양입니다.
결국 뉴헤이븐에는 6시가 조금 안되어 도착했습니다. 아직 해도 떠 있고 하여 일단 구경부터 하기로 했죠.

뉴헤이븐은 말 그대로 예일대의 도시입니다.
예일대학은 하바드와 함께 미국을 상징하는 학교중의 하나이지요.
영국에 옥스포드와 캠브리지가 있다면 미국에 하바드와 예일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한다는 겁니다.
예일대학은 꼭 중세시대 성과 같이 생겼습니다. 하바드나 그외 기타 대학들은 건물들이 있고 건물과 건물사이가 잔디밭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도로가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곳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아마도 가장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바깥에서는 캠퍼스 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물 자체가 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운데에 잔디밭이 있고 그 주위를 건물들이 연결되어 담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잔디밭이 뚫려 있지 않고 폐쇄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바깥의 소음이 건물로 인해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서 차분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중세의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랄까요.
일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많습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운동도 하고 토론도 하고... 건물들은 돌로 만들어진 성곽과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10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구경한 대학들 중 가장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듣기로는 예일 출신과 하바드 출신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뭉치는 힘이라고들 하더군요. 즉 애교심 말입니다. 하바드는 학교 자체가 개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예일은 단결심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 예일은 우리의 해병대와 같은 끈끈함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그런 선입관이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폐쇄적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예일대학은 근처에 싸구려 가게들도 거의 없습니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더군요. 가게 자체가 별로 없는 모습입니다. 식당도 약간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들이 많고 말입니다.

<예일대 캠퍼스 내부>

8시도 넘어 지나서 이제 모텔을 찾아야 하는데 원용이가 깜짝 놀랄 말을 우리에게 해줍니다.
"아빠, 우리는 지금까지 태어나서 호텔이라는 데를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요. 호텔은 어떻게 생겼어요?" 이게 갑자기 웬 황천의 귀신 씨나라 까먹는 얘기입니까?
"아니 너희들이 호텔을 안 가봤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얘기야?"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아이들이 2살 때부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많이 여행을 다녔어도 호텔이라는 이름을 단 곳을 제대로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겁니다. 그나마 호텔 비스무리한 곳이 4년 전에 갔던 싱가폴의 YMCA호텔이구요. 뭐 이 곳도 이름만 호텔이지 전혀 호텔분위기는 아니지요.
박여사와 저는 그럼 다음 여행에는 꼭 호텔에 투숙하는 걸로 하자며 아이들에게 얘기했더니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답니다. 하기야 지금껏 호텔을 모르고 살았는데 저희들이 별 수 있나요? 어떤 건지는 나중에 커서 저희들끼리 가면 될 텐데 뭘, 이런 생각으로 모텔을 찾아 나섰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니까 방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문제는 도시 한복판이라 모텔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사실 그만큼 뉴헤이븐이라는 도시가 썰렁하다고나 할까요? 쿠폰북을 뒤적거리던 박여사가 좋은 걸 발견한 듯 호텔로 가자고 합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아이들 얘기에 충격 먹었나? 뭔 호텔?
그러나 확실히 쿠폰북에 매리어트호텔 계열의 "Courtyard"호텔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름이 호텔이면 됐지 하면서 그 곳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 호텔은 정말 호텔이더군요. 방도 그렇고 로비도 그렇고 호텔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호텔이라고 설명해주고는 아주 싼 가격인 65달러에 투숙합니다. 그것도 75달러 달라는 것을 깎아서 말입니다. 대신 주차장 사용료는 10달러 별도이지요.
이제 밥해먹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8월 초에 한번 더 우리끼리 숙박할 날이 있지만 일단 오늘까지만 밥해먹고 국 조리용으로 잘 사용해온 튀김기를 내일쯤 버릴 예정이거든요. 내일부터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는 관계로 하루 남은 숙박을 위해 그 큰 취사도구를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서 말입니다.
아이들도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귀국 비행기를 연기시키고 더 있자는 얘기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40일 가까이 여행하느라 적응이 된 모양입니다. 저와 박여사도 마찬가지이지요. 돈만 있다면 100일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도시 뉴헤이븐에서의 밤도 깊어집니다.

<아이들이 평생 처음 자보는 "호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