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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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여행기

한국어를 사용하는 반가운 슈퍼마켓!
미들로시안(Midlothian, Virginia)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Virginia)

28부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오늘 이동거리 : 142마일(227 Km), 누적거리 : 4127마일(6603 Km)

어제의 일들을 생각하면 남부의 미국인들도 똑 같은 기분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동부, 북부는 환경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내보니까, 물론 아직 동부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남부가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사람 적고 여유 있고 복잡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훨씬 친숙하고 즐거운 느낌입니다. 한국에서도 사람 적고 덜 복잡한 곳을 주로 찾아 다니곤 했지만 말입니다.

어제 저녁, 오늘의 일정과 DC에서의 일정 등 향후의 일정에 대한 조정이 있었습니다.
일단 24일에는 펜실베니아(Pennsylvania)의 다우닝타운(Downing Town)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이 곳 제 친구집을 떠나 DC로 가서 자고 내일인 22일은 DC의 스미소니언만 구경하는 것으로 결론지었지요.
23일은 볼티모어(Baltimore)의 수족관(National Aquarium)을 구경한 후 펜실베니아의 해리스버그(Harrisburg) 근방으로 이동, 24일은 허쉬 파크(Hershey Park)를 가기로 일정을 수정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제가 가고 싶어했던 아나폴리스(Annapolis)와 게티스버그(Gettysburg)를 가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게티스버그에서는 남북전쟁 당시의 최대 전투였던 그 현장에 서서 링컨대통령의 266단어로 된 짧은 연설문을 현지에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박여사의 반대와 시간적인 이유로 인해 생략하게 된 겁니다.

위의 일정변경에 따라 오늘은 오후까지 쉬다가 오후 늦게 출발하기로 했죠. 저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기에 오전에 바로 떠나기는 섭섭하기도 했고, 이제 헤어지면 또 몇 년은 못 본다고 생각하니 점심이라도 먹고 출발해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말 그대로 집안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어제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필히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여유 있는 상태에서 내일 DC를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별달리 움직이지를 않고 먹기만 했지요.
이 친구 와이프의 음식솜씨는 알아줍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요리를 잘했었는데 미국에 와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솜씨가 배가 되었더라구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사용함직한 접시들로 음식을 담고 갖가지 요리며...이 집에 도착한 그제 저녁, 어제 저녁, 그리고 오늘 점심 모두 푸짐하게 잘 먹었지요. 하긴 제가 누굽니까? 그 멀리 만리타향인 한국에서부터 찾아온 귀한 서방님의 친구 아니겠습니까? 뭐 잘못 보이면 큰일 날까요? 아니지요. 그냥 남편 친구라니까 잘해준 거죠. 괜히 여기서 큰소리쳤다가는 쫓겨나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 와이프는 한 덩치 하거든요. 덩치에 비해 공주풍을 좋아하다 보니 역시나 새집에서는 잘 해놓고 사는 것 같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동안 고생하느라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공주흉내도 못 냈을 텐데 이제는 번듯하게 공주로 살 모양입니다.
점심은 한식으로 먹었습니다. 냉면으로 말입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냉면도 먹고...하여간 미국 와서 살 좀 빼려고 했는데 중간 중간 남의 집에 올 때마다 포식을 하게 되어 걱정입니다. 살만 더 쪄서 갈 것 같습니다.

이제 미들로시안을 뒤로 하고 친구와도 작별의 인사를 나눈 다음 북쪽으로 향해 갔습니다.
어제 내려오면서 봐둔 모텔들이 있었는데 일단은 시간도 충분하고 해서 DC내로 들어가는 걸로 했죠. 거기서 모텔 잡다가 어렵거나 비싸면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로 말입니다.

DC내에서의 운전은 역시나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생각보다 공사구간도 많고 다들 운전하는 모양새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이고 오후가 되어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길도 좀 막히기 시작합니다. 어제까지 저는 미국은 5시에 퇴근을 하니까 그때부터 러시아워가 시작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곳도 있고 해서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오후 2시면 러시아워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어쩐지 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길이 막히더니만...
DC에서 약간 북동쪽에 있는 모텔이 쿠폰북에서 좀 싸게 나와있습니다.
일단 그리로 갔습니다.
헌데 이건 도저히 잘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프론트는 방탄유리로 되어있고 주인과 손님이 마주치는 건 목소리와 손뿐입니다. 밑에 빼꼼이 뚫려있는 곳을 통해 신용카드며 모텔계약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거기다 그 시간에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꼭 마피아 두목 같은 놈들이 2~3명이 어슬렁거리고, 동네분위기도 삭막했지요. 도저히 바깥 출입은 못할 동네였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포기하고 괜히 시간 버려가며 여기까지 왔다고 투덜대면서 오던 남쪽방향으로 다시 차를 몰고 갔습니다. DC에서 10마일이 채 안 되는 지역에 도로옆으로 모텔이 보이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여기는 Days Inn입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투숙하기로 했는데 수요일 저녁 5시쯤인데도 1층은 방이 없답니다. 그러면서 3층을 줍니다. 3층! 우리는 짐도 많은데 그걸 들고 3층까지 가야만 하다니...
짐도 옮겨 놓고 슈퍼로 가려는데 우리보다 밑의 층들이 방이 텅 비어 있고 우리와 같은 쿠폰으로 들어온 백인 남자의 가족들은 1층에 있더군요.
다시 한번 1층을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더블베드 두 개짜리는 없다는 겁니다. 더 이상 싸우기도 싫고 하루만 자고 갈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차별하는 것 같습니다. 쿠폰 손님은 원래 좋은 방을 절대 안주기 때문에 우리만 쿠폰이면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이건 그게 아닙니다. 1층에 방을 얻은 백인이 우리 앞에서 쿠폰을 내밀고 키를 가져가는 걸 봤거든요. 그 사람이 우리의 쿠폰책을 보며 자기와 같은 스타일로 여행한다면서 웃기까지 했지요. 차별이라고 느낄 만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워싱턴 D.C.는 우리가족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겨줍니다.
글쎄요, 나중에 이곳을 다시 찾을지는 모르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도시입니다.

이제 옆에 있는 몰로 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가운 글씨를 보게 됩니다. 뜻하지 않게 한글로 된 간판을 본 거죠. 그것도 대형슈퍼마켓입니다.
우리는 반가운 나머지 그리로 들어가서 필요한 것들을 샀습니다. 역시 주인은 한국사람입니다. 굉장히 큽니다. 미국에 와서 이렇게 큰 한국슈퍼를 처음 보거든요.
하기야 우리가 2년 전에 서부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슈퍼는 2군데만 봤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죠. LA인근과 휴스턴에서만 보았거든요. 이번이 3번째인 겁니다.
일단 한국말이 통하니 아주 좋습니다. 듣기에도 시원시원하고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역시 모국어가 이런 점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걱정입니다.
워싱턴 D.C.가 이 정도면 이제부터 시작되는 북부와 동부의 대도시들, 즉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보스턴, 뉴욕도 더하면 더했지 정도가 덜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남부의 버지니아를 완전히 벗어나 북부로 향하게 됩니다.
이제는 마음가짐도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모텔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