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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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탈리아 여행기

Second Class Hotel의 극치
베로나 -> 밀라노

9부 - 2005년 12월 25일 일요일

밀라노는 토리노와 함께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토리노가 자동차의 도시라면 밀라노는 섬유의 도시입니다. 밀라노는 패션과 섬유, 의류의 도시입니다. 아마도 국내 케이블TV에서 한번쯤은 밀라노 패션쇼를 보신 적이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패션의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도 매년 밀라노의 패션쇼나 전시회에 참가하여 새로운 유행의 물결을 미리 맛보고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밀라노는 패션, 의류만의 도시는 아닙니다. 오히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알프스산맥에서의 풍부한 수력발전을 기초로 금속, 화학, 기계공업 등의 중화학공업이 같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현재 이탈리아 최대의 공업도시입니다. 시 자체 인구도 130만을 넘지만 이 도시권역에 살고 있는 인구는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뿐 아니라 수도인 로마보다도 많은 400만 이상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도시입니다.
밀라노는 공업뿐이 아니라 관광에서도 볼 것이 많은 도시입니다.
로마공화국시대부터 북쪽의 군사기지로 출발하여 국경도시가 되었고 이후 제국의 중심도시로 커가기 시작합니다.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밀라노칙령이 있었던 도시이며 - 사실 밀라노칙령은 콘스탄티누스 혼자의 칙령이 아닙니다. 당시 서로마의 정제인 콘스탄티누스와 동로마의 정제인 리키니우스 황제, 두 황제가 공동으로 발표한 칙령입니다. - 이후 서로마제국의 수도로도 잠시 자리했습니다.
그 후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게 되고 르네상스시대에는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문인,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밀라노의 황금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이후 밀라노는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다가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 밀라노를 야경으로나 봐야 할 겁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고 있어서입니다.
사실 베로나에서 밀라노를 가다 보면 오른쪽 방향으로 멀리 알프스산맥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 기대를 하고 멀리서나마 알프스를 바라보려는 기대를 안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는데 오늘의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구름이 잔뜩 낀 상태입니다.
역시나 날씨에 맞게 멀리 알프스는 고사하고 가까이에 있는 구릉지대들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밀라노까지 가는 내내 그러했습니다.

밀라노는 결국 밤에 도착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가 짧은 이탈리아의 겨울이지만 베로나에서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6시가 되기 전 야간에 도착한 겁니다.
어두운 가운데 밀라노 시가지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맞아 거리가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지금까지 본 도시와는 다르게 도시 자체가 큽니다.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밀라노 두오모성당입니다.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두오모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베네치아의 산마르코성당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밀라노 두오모성당의 전경,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뭐 들은 얘기로는 세계 4대 성당 중 하나라지만 다른 성당들이 둥근 돔지붕을 근간으로 하는 로마네스크양식이 주축이면서 고딕양식을 접목한 성당이라면 이 밀라노 두오모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통적인 고딕양식에 기초해 만들어진 고딕건축의 성당입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성당입니다. 14세기 말에 공사를 시작하여 모든 공사가 완료된 것은 1951년입니다. 자그마치 600년이 걸린 공사입니다. 참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당 하나 짓는데 600년, 500년, 300년이 보통인 나라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이지 뭐 하러 이런 건축물을 만들까 생각이 듭니다. 단지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인 이유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밀라노 두오모성당은 엄청나게 많은 뾰족뾰족한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으며 가운데 황금으로 된 성모마리아상이 우뚝 솟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첨탑의 수가 총 135개입니다.
장관인 것은 야간에 보는 우리인데도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볼 수 있도록 조명이 되어 있습니다.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성당의 야경>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면은 온갖 부조로 이루어져 있어 성당 건축에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벽면에 하나하나씩 조각되어 있는 섬세한 조각, 그리고 첨탑 꼭대기에도 조각된 조각상, 청동부조가 화려한 청동문 등 야간에 보는, 조명을 통해보는 성당인데도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보던 여러 가지 건축물들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주로 보던 우리이기에 인공적으로 화려함과 경이로운 건축의 일면을 과시하는 듯한 성당의 모습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만 한편, 이러한 화려하고 장대한 건축물을 만들기까지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동원된 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물론 중국의 장대한 스케일은 이보다도 도를 더하여 수십만의 인력이 죽어가면서 한 사람을 위한 건축물을 완성하여 현재에 그 웅장함을 보여주지만 유럽의 유명 건축물 또한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런 엄청난 성당 건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일부 부유층이나 정치가, 성직자들의 과시욕에서 나와 만들어진 건축물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런 거대 건축물들, 장엄한 건축물들은 당시의 사람들보다는 현재의 사람들에게 관광수입을 올려주는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에게는 볼 수 있는 건축물, 감상할 수 있는 건축물입니다.

<성당의 벽면 조각,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성당을 지나 광장쪽으로 나가면 바로 앞에 갈레리아라고 하는 거대한 쇼핑몰이 있습니다. 중세시대 성과 같은 모습의 거대한 쇼핑몰입니다. 그 속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리스탈 제품인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장식된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습니다. 반짝이는 것들이 우리와 같은 전등에 의한 것이 아니고 크리스탈이 반사를 내는 것입니다. 주위의 가게들이나 전등의 조명을 받아서 말입니다.
갈레리아를 나가면 바로 이 도시의 상징중의 하나인 유명한 오페라 공연장 "스칼라"극장이 있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이라고도 하는 이 극장의 정면에 등이 4개가 있는데 이 4개가 모두 켜져 있으면 공연 중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기도 해서인지 4개의 등이 모두 켜져 있습니다.
스칼라 극장은 1778년 당시 밀라노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오페라극장으로 유럽 4대 극장중 하나입니다. 이 4대 극장은 평론가들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꼽는 오페라극장이 바로 이 곳, 스칼라극장입니다. 그리고 성악가들에게는 세상에서 꼭 한번 서보고 싶은 무대라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목소리를 음향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게 표현해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종문화회관보다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이 훨씬 음향효과가 좋고 음악적 울림이 좋듯이 오페라극장도 모두 다릅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극장이 이곳이지요.
일반 콘서트 홀로는 아마도 뉴욕의 카네기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접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스칼라극장에서 정장 차림으로 오페라 관람을 하는 것도 좋은 여행의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4개의 등이 모두 켜져 있어 공연중인 스칼라극장>

바로 그 앞의 공원에 밀라노의 또 하나의 자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 있습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다빈치 - 실제로는 피렌체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습니다. - 는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로마에서 그의 천재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했습니다. 흔히 미켈란젤로와 대비하여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미켈란젤로와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그는 미술분야 중 회화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화가로써 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합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동굴의 성모, 동방박사의 예배 등 수많은 회화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그의 그림세계와 예술적 정신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예술적인 재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조각, 건축, 토목, 자연과학, 기계공학, 수학, 음악 등에도 재능을 보여 현재에까지 그의 이름을 드날리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재능은 남달라서 물리, 천문, 식물, 동물, 해부, 지리, 토목, 기계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저작과 작품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해부학과 같은 인체의 묘사를 많이 하여 의학 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의 워낙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그를 종교적으로 특별한 인간으로 묘사하여 쓴 "다빈치코드"라는 책까지 유행하게 하지요.

<다빈치 동상>

<쇼핑몰 갈레리아 내부>

다빈치의 동상을 보고 난 후 밀라노에서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시 성당으로 갔습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이라서 인지 갈레리아와 성당 앞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다시 성당을 구경하기로 마음먹고 우리는 성당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의 카메라의 배터리가 끝이 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사진 찍기는 곤란하여 눈으로 찍는데 더욱 정신을 집중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 된 겁니다.
다시 보는 성당의 삐죽삐죽 솟은 첨탑들은 경이롭다고 해야 하나요. 또한 청동부조들이 조각된 청동문도 대단합니다. 어쩌면 나무를 깎아 만든 듯 섬세하게 청동으로 조각들을 만들었는지 새삼 감탄사가 나오게 합니다.
성당 정문쪽 벽면은 전체를 보수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묵은 때를 벗겨내는지 볼 수 없게 전체를 가리고 보수공사 중입니다.

두오모성당을 뒤로 하고 스포르체스코성을 향해 걸어서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우리네 동대문시장 마냥 가판대에서 이것 저것 물건들을 파는 모습이 보입니다. 완전히 시장판이지요.
스포르체스코성은 15세기 중엽 밀라노의 대공이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체스코가 세운 성으로 브라만테, 다빈치 등이 건축에 참여하여 만들어진 성입니다. 성안에는 미술관이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인 "론다니니의 피에타" 상도 있습니다. 만년의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피에타보다 좀더 인간적인 피에타를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만들다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바티칸의 피에타와는 다릅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는 성모마리아가 무릎 위에 죽은 그리스도를 받치고 안고 있는 모습인데 반해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그리스도의 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서 성의 겉 모습만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그 안의 미술품들은 상상속의 그림으로 남기고 밀라노의 밤 풍경을 뒤로 한 채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을 향해 떠나갑니다.

<스포르체스코성의 모습,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제 1주일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을 머리에 새기고서는 정리할 시간이 왔습니다.
좀 쌀쌀하거나 춥거나 하여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볼 만한 것들은 웬만큼 볼 수 있었고 느낄 만한 것은 웬만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여행입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일 겁니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와 볼거리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사람들과 생활모습을 볼 수 있고 또한 다양한 여행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아이들은 너무 한가지 방식에만 의존해 여행을 해왔습니다. 가족들만의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 방식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시간이 부족하여 준비할 시간이 없었지만 새로운 패키지여행도 한번쯤 경험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향후 더 멋진 유럽여행을 위한 리허설, 워밍업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구호일까요?
뭐 여하튼, 어떻게 생각하든 이번 여행은 잘 온 것 같습니다. 겨울과 여름을 비교할 수도 있었고 말입니다.

<두오모성당의 청동문 조각>

마지막 호텔은 그야말로 여행사에서 예고한 "Second Class Hotel"의 극치입니다.
그동안 겪은 모든 호텔중 최악입니다. 벽지도 바래서 일부는 뜯겨져 있고 시설도 그리 깨끗하지 못한 호텔입니다. 그나마 물은 잘 나옵니다.
패키지여행에서 "Second Class Hotel"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여행입니다.
다음에 또 패키지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격에 만족하고 일정에 만족하고 가이드에 만족한, 그러나 음식에 실망하고 호텔이 불만족스러운 그런 초저가 특가 상품이었습니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12월 말에 다녀온 이탈리아는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맛 말입니다.
멋진 이탈리아의 대리석 건축물들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한국에 만약 대리석이 많았다면...지금은 새로 만든 중앙박물관에 있지만 고려시대 유물인 경천사지 석탑이 다른 석탑들과 다른 것은 대리석으로 만든 전해오는 유일한 탑입니다. 한번 가서 보면 이탈리아의 대리석 조각상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만큼 섬세한 조각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듯한 부조가 이탈리아에서 보는 여러 조각작품들과 진배없는 수준입니다. 다만 기독교에 대한 것과 불교에 대한 것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즉, 건축자재의 종류에 따라 현재 볼 수 있는 유적의 종류나 크기, 양, 질이 다르다는 얘기이지요.
우리 땅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마지막 잠자리에 듭니다.